지속적으로 궁금했던 사혈의 효과.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게 되었다.
1. 습부항의 효과는 무엇인가?
2. 습부항의 적응증은 무엇인가?
3. 잘 써먹는 습부항은?
네이버 발췌
다양하고 구체적인 의학적 사료에 근거하여 과거 서양의학에서 쓰였던 사혈요법에 대하여 폭넓게 정리해주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몸에서 피를 뽑아내는 것이 신체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답변을 달기 전에, 교수님의 글에서 쓰인 사혈이란 용어에 대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글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수님의 글에서 사혈이란 용어는 주사기 또는 기구를 정맥에 찔러 피를 내는 치료법으로 venesection(정맥절개, 사혈. 의학용어집:대한의학협회, 2001)에 대하여 기술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읽다보면 사혈은 위험하고, 알지 못하면서 시술하고, 사망에 이를 수 있고, 그 효과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부족하고, 실제로 효과를 보이는 경우도 없고, 마지막에서는 황당한 치료법이라는 생각이 충분히 들게 되는데 그것은 글에 쓰여진 것처럼 과거 서양의학에서 사용해왔던 정맥에 상처를 내거나 흡각, 화살촉, 칼 등 다양한 기구를 사용해 한 방울에서 2리터 정도의 피를 부위를 막론하고 이유 없이 효과가 날 때까지 뽑아냈던 과거 서양의학의 사혈치료법에 대한 의견이라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도 ‘사혈’을 검색해봤더니, ‘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환자의 혈액을 주사기를 써서 체외로 뽑아내는 일’이라고 하였고 본문 설명에서는 ‘방법은 100cc의 주사기와 주사침을 소독하고 혈액응고를 막기 위해 멸균한 10% 시트르산나트륨용액에 적셔두었다가 주정맥(?靜脈)을 찔러 100~300 cc의 혈액을 서서히 흡인 제거한다. 뇌출혈 ·고혈압 ·심부전 외에, 폐수종 ·요독증 ·적혈구증다증 등이 있는 환자에게 실시한다. 울혈(鬱血)이나 부종(浮腫)을 경쾌하게 하고, 심장순환계의 부담을 경감시켜 효과를 보이는 수가 많다.’라고 설명 하고 있습니다[두산백과사전].
이것은 모두 서양의학의 사혈, venesection(정맥절개)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입니다. 교수님의 글에서도 앞부분에서는 무지하고 단순했던 과거 서양의학의 과도한 사혈에 대해 전개를 해나가다가 갑자기 마지막 단락에서 ‘체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바늘로 손가락 끝을 따는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사혈은 계속 이용되고 있다.’하며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혈과 동일시해버리는 오류가 보입니다.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혈이란, 교수님의 글에서 서두에 기술된 '피를 몸 밖으로 빼내 질병을 치료하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수많은 댓글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일반인들이 ‘체 했을 때나 쥐가 났을 때 일회용 침이나 소독된 바늘로 손 끝 마디를 찔러 피를 한 두 방울 내는’ 구급요법과 한의원에서 시술하는 자락요법이나 부항요법 역시 피를 몸 밖으로 빼내기 때문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한의원에서 시술되는 자락요법이나 부항요법은 피를 내는 양과 부위, 그리고 시술방법, 적응증이 글에 쓰인 사혈과 다르지만 이 글에서는 통칭해서 사혈이라고 기술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한의학의 자락요법, 부항요법도 위험하고 치료효과는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혈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설명 없이 “사혈, 피를 뽑아내면 질병이 치료된다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치료 효과가 없다.”하며 피를 뽑아내는 모든 치료법을 포괄하여 부정적인 내용으로 결론 지으신 부분은 적절하지 않다고 사료됩니다.
그럼 이제 몸에서 피를 뽑아내어 신체에 도움을 주는 경우에 대한 본 답변을 시작하겠습니다.
한의학에서 시술하는 몸에서 피를 뽑아내는 치료법은 원래 자락(刺絡)요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중국에서도 자혈(刺血)요법, 방혈(放血)요법, 자락(刺絡)요법 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blood-pricking technique으로 표기합니다(原一祥 외 3인:한영쌍해중의대사전, 인민위생출판사, p580 (장인수. 월간의림지 2002년 8월호. p44-45재인용)). 논문에서는 자락요법을 venesection으로 기록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동일한 치료법이 아니라 사혈이란 의학용어를 찾아 그대로 번역하여 생긴 오류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blood-pricking, blood-letting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자락요법이란 삼릉침(三稜鍼), 소미도(小眉刀), 피부침(皮膚鍼) 등의 기구를 써서 환자의 신체상의 천표층의 혈관을 찔러 소량의 비생리적인 혈액을 방출시키는 치료법입니다. 이를 통해 국소부위의 울혈과 부종을 치료하거나 뒷목 쪽에서 자락하여 혈압을 내릴 뿐 아니라 특정 부위에 자락요법을 시행하면 전신적인 혹은 먼 부위의 질환을 치료하기도 합니다(예: 무릎 뒤쪽의 위중혈에 시술하여 요통을 치료하는 것).
자락요법의 효과는 活血通絡(활혈통락, 혈액순환을 되살리고 경락을 통하게 함.) 開竅醒神(개규성신, 눈, 코, 입, 귀를 열어주고 정신을 돌아오게 함) 解毒消腫(해독소종, 독을 배출시키고 종기나 붓기를 가라앉게 함) 입니다.
그 생리학적 원리는 혈액성상, 혈류, 근육, 신경계, 호르몬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사려 되며 동물실험으로 혈액성상 변화에 대한 연구 결과가 많이 있습니다만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임상적으로는 중풍, 고혈압, 요통, 이비인후과, 안과질환 등등에 사용되고 관련 논문이 있습니다(일부 아래에 정리하였습니다). 자락요법은 점자, 도자, 총자, 산자, 정맥자락, 세락자락, 피부자락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안현석, 박영배, 강성길. 자락(刺絡)요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 대한침구학회지 제10권 제1호. 1993.). 시술 방법은 논외이므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자락요법은 중요한 장기나 대혈관부위에 대해서는 금해야 하며 빈혈, 저혈압환자, 출혈경향이 있거나 혈관류의 질환에 대해서는 자락요법을 금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문헌적으로 자락요법은 안 이비인후과 및 구강과 질환의 치료에 가장 많이 이용되었으며 단일질환으로는 요통의 치료에 가장 많이 이용되었습니다(안현석, 박영배, 강성길. 자락(刺絡)요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 대한침구학회지 제10권 제1호. 1993.).
또한 중풍치료에 활용된 자락요법을 살펴보면, 주로 사지말단부 및 주슬 이하에 위치한 경혈을 주로 활용하고, 두면경항부에 분포한 경혈을 다음으로 활용하여 중풍초기에는 淸熱開竅(청열개규, 열을 내리고 눈, 코, 입, 귀 등의 통로를 열어 줌)의 작용으로, 만성기, 반신불수, 비증, 현훈, 구안와사 등에는 通經活絡(통경활락, 경락을 통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되살림)의 작용으로 활용되었습니다(남창규, 이진섭. 중풍에 활용된 자락(刺絡)요법에 대한 문헌적 고찰. 대한한방내과학회지 제15권 제2호. 1995.).
임상연구 결과로는 뇌졸중 환자의 혈압을 내리는 데 효과를 보였다는 논문이 주를 이룹니다.
중풍환자 79명에서 십선혈(十宣穴) 2~3cc 사혈 후 30분 후부터 혈압, 체온을 30분 간격으로 3회 측정한 결과 고혈압 Stage 3 환자에게서 수축기, 이완기 혈압이 모두 유의하게 감소하였으나 체온에는 영향이 없었다. (이경진 외 8인. 중풍환자에 있어 십선혈사혈이 혈압 및 체온에 미치는 영향. 대한한의학회지 제21권 제1호. 2000년.)
대추혈에 습식 부항을 시술하여 뇌졸중환자의 혈압을 유의성 있게 감소시켰다(신정애, 이영구. 중풍환자의 혈압 상승에 대한 대추혈 사혈의 혈압 강하 효과. 대한한의학회지 제23권 제3호. 2002.).
고혈압 약을 투여하지 않고 BL15(심수), BL23(신수), LU5(척택), BL40(위중) 사혈로 혈압이 유의하게 하강하였다(문장혁 외 8인. 고혈압 뇌졸중 환자에 대한 사혈의 강압효과. 대한침구학회지 20(2). 2003.).
41명의 뇌졸중환자를 두 그룹으로 구분하여 15명의 환자는 동자침을 시행하고, 26명의 환자는 풍지혈(G20) 자락을 하였고 만약 수축기혈압이 160이상 또는 이완기 혈압이 90이상이면 동자침과 풍지 자락이 시술되었고 30분과 60분이 지나서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과 맥박을 측정한 결과 동자침과 풍지혈 자락이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의 하강에 유효함을 보여주었다. (박인범 외. 洞刺鍼과 風池穴 刺絡의 血壓降下 效果. 대한침구학회지 20(1), 2003.)
46명의 low back pain 환자를 침치료와 위중방혈 그룹으로 나누어 치료하고 통증의 강도, 주기, 지속시간, 악화요인으로 통증을 평가한 결과 치료 전에 비해 유의하게 감소하였다(이상훈 외 5인. 위중혈 자락의 요통에 대한 치료효과. 대한침구학회지 19(1). 2002.).
현존하는 의학문헌 중에서 가장 오래된 황제내경이라는 고전한의서에서부터 자락요법에 대한 기술이 나오며, 그 후에도 많은 문헌기록과 연구가 있었고 현재까지도 자락요법을 안전하게 시술하며 많은 치료효과를 보고 많은 환자들이 그 효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자락요법을 시술할 때 당연히 환자의 몸 상태를 살펴 금기증이 없을 때 시술하고, 경락 이론으로 사혈을 해도 되는 부위와 해서는 안 되는 부위를 나누어 시술하고, 경락 내에서도 사혈을 할 수 있는 경혈과 할 수 없는 경혈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환에 손끝을 사혈한다고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질환에 특정 혈에 사혈을 하는 방식으로 시술하여 치료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단지 최근에 이런 금기증이나 시술 원리, 방법을 잘 모르시고 사혈을 이용하여 자가 치료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이 조금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이부분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고자 글을 쓰신 것이라면 찬성입니다만 일반적인 구급요법으로 활용될 수 있는 사혈과 한의학의 자락요법까지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글을 계기로 교수님의 이전 캐스트 글도 열심히 보고 있는데요, 혈액순환 편에서의 내용처럼 지금은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하비의 혈액순환이론도 말피기가 모세혈관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인정받지 못했던 것처럼 한의학도 경락이나 경혈을 보여주지 못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효용과 치료효과가 있는 시술에 대해서 이론을 아직 밝히지 못했다고 부정적으로 기술되거나 사장되어 버리는 일은 자제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라면 하비의 혈액순환이론도 밝혀지지 못했을 것이고, 어떤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어도 인정받고 검증되기 전에 묻혀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될 것입니다.
서양의학에서도 화학실험, 세포실험, 동물실험 모두 성공했지만 임상에 들어가면 효과가 나지 않거나 예상치 못했던 다른 효과를 내는 약들이 많은 것처럼 한의학에서는 반대로 임상에서 효과를 보이고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을 어떤 방식의 임상연구로 검증해야할지, 어떤 동물실험으로 기전을 확인해야 할지가 어렵고 좀더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기본적으로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치료기술의 근간이 되는 이론과 발전의 방향이 다른 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저해하고 학술적 교류를 가로막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국 질병의 치료와 환자의 건강을 위한다는 목적은 같으므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분야를 인정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하며 치료법에 대한 진솔한 의견을 나누고 질병 치료를 위해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는지 객관적이고 정확한 검증을 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지식으로 답변을 달려니 부끄럽지만 많은 분들의 오해가 좀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 올립니다. 교수님의 글 덕분에 저도 많은 생각이 정리가 된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